책을 좋아하지 않아 읽지 않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큰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처럼 배척합니다.
훌륭한 사람들은 대게 책을 가까이하는 것 같은데 전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려나 봅니다.
그래서 말주변도 부족하고 어휘력도 딸리는가 봅니다.
제가 부러워하는 유형의 사람은 예시를 잘 들어가며 얘기하시는 분들입니다.
어느 책을 저술한 중세의 ‘키를라코케르케르’ 같은 느낌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거론하며
그분이 했던 유명한 말이나 논리를 인용하는 말의 기술.
말씀하시는 분의 품격이 치솟고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서 하트를 뿅뿅 보내게 됩니다.
다른 여지없이 글 읽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러워도 오~ 하고 마는 수밖에요.
그럼에도 소박한 저는 “책을 많이 읽겠어!” 따위의 결심이 들 리 없었습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내 생각이 다른 생각에 영향을 받는 것은 퓨어한 내 생각이 아니다’입니다.
적절한 변명거리를 찾다 생각한 궁색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생각에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유독 책에 대해서만 이런 잣대를 드미는 것은 정말 잊혀진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등학교 때 글짓기를 어느 가정집에서 배웠던 것 같은데,
원고지에 글을 쓰면서 맞춤법도 배우고 독후감도 썼고요.
아마도 그때 어떤 미지의 기억이 저에게 독서의 참 맛을 빼앗아 갔다고 봐야겠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머릿속에 떠오른 모습조차 기억에 없는 은사님이신데 갑자기 범인이 되셨습니다.
매주 한 번씩 동네에 왔던 책버스는 잘 이용하면서 책도 많이 읽었었던 것 같은데,
이사 오면서 그 버스가 없어졌던 탓인지,
점점 글자가 빼곡해지는 교과서도 책이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나우누리 탓인지, 스타크래프트 탓인지, TV 좋아하시는 아버지 탓인지.
여러 가지가 이유를 마구 만들며 학식을 쌓길 거부했던 원초적인 본능은
생경한 단어가 오고 가는 격조 높은 하이 클라스 대화의 전장에 이따금씩 휩쓸리는 종종
가마니 전술을 기막히게 펼치는 저를 만들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책을 읽지 않는 저인데 ‘내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부터 글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 논리대로라면 저의 생각을 읽으시는 분들의 생각은 순결하지 못하게 되실 겁니다.
그래도 다른 분들은 제 글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중성에 숨막힙니다.
제가 생각해도 제가 너무 별로라서, 이렇게라도 셀프 변호해봅니다.
이 글은 저에게 쓰는 글이라고요.
하다가 안되면 다시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하지 않기 위해 쓰는 글이라고요.
마음을 다잡고 저를 다잡고 있는 과정이라고요.
이렇게 하나씩 글이 모이다 보면 나중에는 좀 더 나은 글을 쓸지도 모르고 책이 될 수도 있고요.
자라나는 아이가 이 글을 읽을 때가 되면, 아빠가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글을 많이 써서 만약에 만약에 책이라도 된다면,
발행을 기념으로 저도 이제 다른 분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으로 보고,
책을 많이 읽겠다는 약속도 해봅니다.
지금은 저를 위해, 날 것 그대로의 저를 계속 써 가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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