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선에 서 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뇌가 소박해서 큰일입니다.
밑도 끝도 없이 난데없는 자기 고백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들킬 일이라서 전전긍긍하다 들키기보다는 시원하게 까고 시작하는 편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 기분은 뭐랄까요,
집 없는 달팽이가 6차선 도로를 횡단하는 기분이고
이제 막 보도 블럭을 꿀락거리며 간신히 내려와 아스팔트에 닿은 기분입니다.
아스팔트의 느낌이 거친 건지 따가운 건지 찬 건지 뜨거운 건지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계속 조금씩 앞으로 가도 모자랄 것 같은 판인데,
가다 서다 왼쪽 오른쪽 뒤로 돌고 대각선, 또 회전 뱅글뱅글, 막 다양하게 발광합니다.
고작 1센티도 안될 것 같은 공간에서 갇혀 버둥대고 있습니다.
길을 건너다보면 몇 개의 자동차 바퀴를 피해야 할까요?
정말 운 좋게 바퀴를 피한다고 쳐봅니다.
아마 타는 듯한 아스팔트의 열기와 날 지켜보는 태양은 얼마 가지 않아
꾸덕하게 나오는 지금의 진액을 금세 말려버릴지도 모릅니다.
정말 운 좋게 몸이 마를 때쯤 분무기 뿌리듯 고마운 딱 그 정도의 비느님이 내려준다 쳐봅니다.
그럼 옆에서 개구리라도 뛰는 날엔 어쩔 것이며
집이라도 달고 기는 달팽이가 부러워 걸음 멈춰 구경만 하는 것은 아닐지 염려됩니다.
그래요, 다 이겨냈다 쳐봅니다.
새들의 노림과 먹을 것 없는 배고픔까지 운수 좋게 넘겼다 쳐봅니다.
아마 다 계산해 보면 ‘백천구천삼억만오십이천천만조십억’번의 고비를 넘겼을 텐데,
막상 도착하면 진짜 내가 꿈꿨던 곳일지 가보지 않아 모르는데 아닐까 봐 불안하고
누군가는 ‘이제 시작이야, 허허’라고 얘기할 것만 같아 공포스럽습니다.
그런 길의 시작에 서 있는 기분이라, 되게 외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다행히, 뇌가 소박하여 기분은 좋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 시작점에 겨우 섰습니다.
이제 “내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221219 866 0 8000 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