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반 동네 하천변을 걷거나 뛰었습니다.
유산소 운동을 마치고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스쿼드 15세트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아침에 일과 준비를 서두르는 가족들의 풍경과 걸맞게
‘나 살아 있다고! 나도 뭘 하고 있다고!’ 보란듯 부산하게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땀을 쭉 빼고 집에 들어오면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운동하는 동안 떠올랐던 아이디어들을 까먹을세라 메모장에 기록합니다.
아침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살 빼고 싶어서 혹은 살이라도 빼야지’라는 생각도 있었는데,
뭐라도 해야지 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운동을 하는 머릿속은 운동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 생각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어떤 날은 ‘오 이 사업 아이템 기막힌데?’ 하며 혼자 업되어 쉐도우 복싱을 해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떤 이를 한없이 미워하고 차마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시원하게 쏟아 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TV 채널 잽핑하듯 여러 생각이 빠르게 바뀌며 어지러움을 겪기도 하고,
어떤 날은 며칠 전 떠올랐던 사업 아이템이 갑자기 후지게 느껴지며 죄없는 돌맹이에 싸커킥을 날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저에게 욕먹었던 대상이 재등장하여 이어서 욕하기도 했습니다.
머릿속이 사나웠습니다.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았습니다. 격랑.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피어나는 생각을 외면하며 머리를 흔들어 본들
어느새 자꾸 그 생각과 마주했습니다. 아침 드라마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절절히 하소연하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봅니다.
그래도 그렇게 쏟아내며 상쾌하게 집으로 향했습니다.
구석구석 씩씩하게 씻습니다.
제가 폐인 같지 않았습니다.
거울에 비친 노란 조명 속 제 머리를 양손으로 쓸어 넘기며 시선은 조금 들어갔을 확률이 있는 배를 봅니다.
이러다 王자가 생기면 어떡하지? 몸짱이 될것만 같은 기분에 잠시 취합니다.
커다란 변화는 또 있었습니다.
사랑하던 게임을 모조리 삭제했습니다.
친구와 다름 없었던 그들이었지만 이제 놀지 않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그렇게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것보다 이 상황에 게임하고 있는 저를 한심하게 바라볼 것만 같은 가족들의 눈이 무서웠습니다.
결코 이 것은 자의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타의도 아닙니다.
어찌되었던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로 방에 격리한 일주일만 빼고는 현재까지 유효합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아침 운동 후 잠시 휴식, 점심을 먹고 볼 일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TV를 봤습니다.
평소에 잘하지 않던 집안일도 척척하면서 ‘쉬고 있지만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가치 입증을 위해 몸을 움직였습니다.
같이 살고 있는 분들의 칭찬을 기대하면서 했습니다.
시간을 보내야하니 청소도 더 꼼꼼하게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4~5시부터는 골프 한 시간, 수영 한 시간씩 총 2시간 정도 운동을 더하고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뭐랄까요. ‘옳거니, 한량의 삶이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주민 시설을 이용하다 보니 돈이 많이 들지 않았고 꽤 괜찮은 해본 적 없는 라이프 사이클이어서 좋았습니다.
일과를 마친 우리 가족이 모두 모였습니다.
요리를 하고 가족들과 즐겁게 식사 했습니다.
운동까지 많이 했으니 술에 대한 죄책감도 덜해 반주는 거의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뒤, 쇼파 고정석에 둔눠서 예능을 쭉 시청하고 늦은 밤 잠을 청했습니다.
이런 사이클에 익숙해지고 있는 무렵,
아침에 만나는 동네 사람들이 내가 백수라는 것을 알면 어떡하지?
어? 나름 집안일을 해놨는데 오늘은 가타부타 얘기가 없네? 이제 나가서 일하라는 건가?
엇 골프 치는데 오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을 할까? 티셔츠 너무 후줄근했나?
수영 하시는 분들은 입소문이 빠르다던데 내가 백수인 것을 눈치채기 전에 시간대를 옮겨볼까?
와 운동센터 프런트 직원분이 이 번에는 저 멀리 있는 사물함 키를 주셨네, 혹시 시간 많아 보여서일까?
이런 생각들이 한 번씩 들었습니다. 다들 노관심이셨을텐데요.
신경 쓰신다고 하신들 뭐 어떤 일이겠습니까마는, 점점 그래졌습니다.
직업이 없는 저의 모습이 조금씩 어색해져갔고 몸에 없던 비늘이 생기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내 비늘이 보이는 것인지 탐색을 위해 상대방의 눈빛을 분주하게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물어보는 말에 렉 걸려서 뻐끔거리는 경험도 신선했습니다.
자신감이라는 것이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자세가 구부정해지고 어깨가 좁아집니다.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시선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안 그랬는데 점점 그렇게 되어 갑니다.
스스로 잉여가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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