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펌(1)

결정은 제 몫이었고 여파도 계산해야 했습니다.

혼자만의 일이 아니게 된 몸이기에 컨펌을 득해야 하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몸 안에서 결정이 굳어진 퇴근길,

조금씩 익숙해졌던 길 위에서 ‘드디어’라는 생각이 반가우면서도

집에 가면 어떻게 말을 해야, 앞으로 어떻게 할까, 내일 회사에는 뭐라고 해야 할까 하다가

다시, 집에 가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짧은 간격으로 돌고 돌았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유를 최대한 솔직하게 얘기하자고 하면서도

나의 설명이 자칫 그녀에게 나를 왜소하게 보이게 할까 봐 머릿속에서 작문과 퇴고를 거듭했습니다.

그동안 미루던 ‘내 일’에 대한 결정을 하게 된 결정적 모먼트를 발견한 나는 대견하지만,

그런 결정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그다지 필연적 상황이 아니었던 탓에,

나의 결정이 상황을 간파한 그녀의 불안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짧지만 나름의 인생과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여러 사람을 겪었습니다.

제가 가지지 못한 것, 저 스스로 큰 장점이라고 여기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분들을 보며 감탄한 때가 많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 제가 오늘 저녁에 제 의견을 관철시켜야 하는 분은 가장 존경하는 분이었습니다.

적절하게 상황 판단을 하면서 그 판단에 대한 결과가 대부분 좋은 편이고,

드물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더라도 특유의 유연함과 포용력으로 ‘그럴 수도 있지’를 만들 수 있는 분입니다.

의도해서 한다기 보다는 훌륭한 성품이 결과를 냅니다.

그런 분에게 적절하게 내 상황을 설명하면서 결정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야 했습니다.

덮어놓고 부정적인 얘기를 할 분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덮어놓고 찬성할 분이 아닌 것도 압니다.

그만큼 가까이서 저를 봐온 분위기에, 때때로 ‘내 일’에 대한 갈증을 풀어놓던 그녀였기에,

아마 ‘오빠를 믿는다’라고 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든 이후로는 머리가 조금 편해졌나 봅니다.

대략 퇴근길의 절반을 넘어선 뒤로 머리의 복잡함은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라디오를 듣거나 멜론으로 음악을 들으며 갔던 것 같습니다.

음악 소리가, 진행자의 멘트 소리가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정체가 심한 퇴근길이었지만 이날 만큼은 무척 빨리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에 주차 쉬익 하고 현관문이 열리기 전까지 평온했습니다.

맞벌이를 하기에 제가 먼저 도착했는지 그녀가 먼저 도착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다음 기억의 그림은 우리 집 식탁입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얘기를 꺼냈습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회사에서 이런 얘길 하더라고, 난 그 상황을 이렇게 느꼈다고.

그녀의 표정이 걱정스러웠지만 뇌가 소박한 저는 가감 없이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해왔던 일에 대한 아까움과 오늘 느낀 불협화음에 대해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고 하는 나의 소회까지.

어느 정도 그녀는 저를 안쓰럽게 보고 있었습니다.

221223 866 0.3 8000 HM@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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