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마주 앉아 늦은 저녁을 했습니다.
‘나 회사 그만두려고…’
어쩌다 보니 말은 통보로 나갔지만 그녀의 동의를 갈구하는 눈동자였습니다.
잠깐의 머뭇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는 눈치입니다. 표정은 담담합니다.
몇 번의 질답이 오고 갑니다.
무엇을 먹었는지 밥맛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
예상하고 있던 그녀였습니다.
생각보다 동의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생 중, 가치를 느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몇 번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스스로의 포기였습니다.
그런 포기의 순간마다 저로 하여금 그런 선택을 하게 한 대상을 찾아 범인으로 몰았습니다.
스스로 포기한 것을 외면해버려서 조금이라도 괜찮아지기 위한
본인에게 소름 돋게 관대한 세상 유연한 정신승리의 순간.
벽에 부딪혀 아플까 봐 무서웠던 거면서,
몇 번 찔린 따끔함이 뜨거워 다 안 것 마냥 결론낸 것이었으면서,
마냥 좋아 보여, 가야 할 길 어떻게 생긴지 들여다보지도 않고 찾아가
새어 나오는 입 냄새 조금 맡고 혼비백산 도망쳤던 것이었으면서 말입니다.
오래간만에 그때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녀의 컨펌은 떨어졌지만 그 순간 찌른 그 기억들의 냄새는 다시 겁이 났습니다.
한편으로는 ‘어? 이렇게 되는 게 맞나? 왜 안 잡아주지?’ 라는 생각도 아주 조금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고민했던 ‘내 일’이지만,
뾰족하게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 없이 때가 되어 하겠다는 출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같이 고생해야 하는 결정. 걱정.
불투명하고 험난함이 예상되는 지도 없는 모험.
그날 밤 저는,
개인 역사상 최초로 그 누구도 볼모로 잡을 수 없는 ‘자유인의 벼랑’에 기어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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